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include(틀:국기, 국명=오만, 출력=, 크기=40)] [[오만]]☆ === 2011년 2월 19일 시위 첫 발생. 큰 규모의 시위. 오만은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국왕이 40년째 재위하면서 아랍 동맹 국왕에서 최장 기간 집권했다. 그러나 카부스 국왕은 [[독신]]으로 [[자녀]]가 없으며 [[후계자]]도 없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척]]들조차 정부 요직에 기용하지 않은 상황으로서 국왕 이후가 불안정한 상황. 정세가 비교적 안정적이던 오만에서도 결국 시위가 벌어졌다! 26일, 국왕은 개각을 단행하면서 일자리 5만개 창출과 구직자에 매달 390달러(45만원 가량)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위는 계속되었다. 2월 19일, 수도 [[무스카트]]에서 작가와 교수 등 800여 명의 시위대가 의회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할 것을 촉구하는 거리 행진이 벌어졌으며 26일, 소하르에서 진행된 시위에는 1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 시위 진압 과정에 2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당하면서 시위 열기가 차츰 늘어갔다. 27일, 소하르 등지에서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가 열렸다. 도로를 막고 슈퍼마켓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이 고무탄을 발포해 시위 참가자 6명이 숨졌다. 28일, 소하르에서 소하르항의 접근 도로를 트럭으로 막고 700여명이 '오일 달러의 공평 분배'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3월 초, 정부가 개각과 "슈라 위원회" 역할 확대로 시위대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시위는 상당히 잦아들었다. 6월에도 시위가 있었으나 시위자 30명이 구속되는 등 소요는 말끔히 해결되어버렸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Qabus_bin_Said.jpg]] 이는 오만 국왕이 "[[르네상스]]"에 비견 할만한 개방과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파 출신으로 [[1970년]] 아버지를 무혈 [[쿠데타]]로 몰아낸 후 무스카트·오만 왕국에서 오만 왕국으로 국호를 바꾼 것도 국왕. 즉위 직후 [[국제연합]]에 가입하고, [[1996년]] 기본법(헌법)을 만들었고, [[2003년]] 전 국민에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매년 초 2∼3개월 간 각료들을 대동하고 각 지방을 돌며 민의를 살피고 이를 국정에 반영한 것도 국왕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역시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막았다.[[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7/24/0601260100AKR20130724198100070.HTML|#]] 결국 오만 시위의 원인은 정치 개혁과 민생 해결이지, 반국왕이 애초에 아니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1940년]]생) 오만 국왕의 후계 문제는 왕권 유고(사망)시 3일 이내에 왕가 회의인 통치가문위원회가 선출하도록 되어있는 상태이다. 9년 후인 2020년 1월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40년의 통치 끝에 지병인 암으로 사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